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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 컬럼] 왜 쇠돌이는 마징가 머리로 ‘파일더 온’ 하는 걸까?

* 앞으로 (부)정기적으로 지빗에서 연재물이 제공됩니다. 그 첫 회를 맡아주실 박규상 교수님은  풍부한 지식과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서브컬쳐 관련된 재미있는 읽을 거리를 제공해주실 예정입니다. 박규상 교수님께서는 고려대와 일본 동경대에서 심리학과 사회정보학을 공부하시고 홍익대 광고홍보대학원에서 문화 콘텐츠 전공 겸임 교수를 역임하신 문화 컨텐츠 전문가이자 수천권의 만화책을 보유하기도 하셨던 멋진 오타쿠이십니다 🙂

연재를 시작하며…

“안녕하세요, 지빗 여러분. 컬럼을 시작하게 된 박규상이라고 합니다. 서브컬쳐의 즐거움과 멋진 물건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을 이렇게 지면으로나마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어린 시절부터 빠져 살던 애니메이션의 몹쓸 영향으로 나이에 걸맞은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모차르트를 원망했던 살리에르 마냥 ‘왜 저한테는 오타쿠의 욕망만을 주시고 오타쿠의 능력은 주시지 않았나이까!’를 되뇌고 있는 제가, 주제넘을지 모르는 컬럼을 쓰게 되어 살짝 두려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쌓아온 내공으로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여러분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악플, 비난플보다는 많은 격려플과 정보플을 부탁드립니다.”

 

<아톰컬럼 1회>

왜 쇠돌이는 마징가 머리로 ‘파일더 온’ 하는 걸까?

 

어린 시절 봤던 마징가Z.

저녁밥도 잊게 만들었던 애니를 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로켓 주먹은 언제 다시 돌아오나 하는 고민도 아니고, 왜 바보처럼 마징가는 적 기지를 알아내서 소탕할 생각은 안하나도 아니고, 바로 바로 ‘파일더 온!’하며 쇠돌이가 탄 호버 파일더가 머리통에 도킹하면 눈이 번쩍하는 장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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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징가제트의 파일더온 장면

‘와우!!’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답니다.

그런데 말이죠, 나중에 건담을 보다가 그 철학적인 무게감은 좋은데 뭔가 2%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뭐지 하다가 ‘파일더 온!’이 생각났죠. 맞아요. 로봇에 탑승하는 방식이 맥아리가 없던 겁니다. 건담 시리즈의 대부분은 파일럿이 가슴으로 탑승하게 되죠. 그러고 보니 에반게리온은 등 쪽으로 ‘엔트리 플러그’라는 원통형의 콕핏(cockpit)을 타고 들어가네요. 이것도 마징가 만큼의 임팩트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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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은 이렇게 가슴부위 탑승을 하게 됩니다

남자라면(아니 여자라도) 한 번쯤 빠져들었던 로봇 캐릭터. 그래서 오늘부터 새로 시작하는 컬럼은 로봇 파일럿의 탑승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할게요. 참, 너무 딴지는 거지 마세요. 이건 어디까지나 ‘이렇게 생각해 보면 뭔가 재밌잖아’의 이야기니까요.

자, 그럼 먼저 만화나 애니에서 파일럿이 로봇을 조종하는 방식을 분류해 보죠.

 

리모콘으로 조종하던 시대

우선 첫 번째로 로봇 캐릭터의 선조격이 <철인28호>. 파일럿이 탑승하는 방식이 아니라, 달랑 조종간이 두 개 달린 리모콘은 로봇을 조종합니다. RC방식인 셈이죠. 이런 로봇을 ‘외부조종형’이라고 하죠. 파일럿은 한참 싸우고 있는 로봇과는 거리를 두고 안전하게 조종을 합니다. 로봇이 부서지거나 데미지를 입어도 ‘젠장, 수리비가 들겠군.’ 정도로, 파일럿은 다치거나 아픔을 느끼진 않겠죠. <철인28호> 만화가 1956년에 나왔으니 당시를 생각하면 외부에서 조종하는 로봇은 어쩌면 획기적인 것 같지만 당연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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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처럼 조종하는 철인28호

 

머리로 탑승하던 시대

두 번째 조종 방식은 <마징가Z>처럼 머리 쪽으로 탈것을 타고 들어가는 방식입니다. <마징가Z>가 나온 1972년 이후에는 한동안 이런 방식의 로봇이 유행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역시 뭐든 머리통이 중요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죠. 원작자인 나가이 고(永井 豪)는 ‘자동차처럼 간단히 조종하면 어떨까’라 생각했다고 하네요. 조종할 때는 자동차 계기판을 보면서, 레버, 버튼, 핸들을 조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죠. 그러고 보면 대단히 테크놀로지 지향적인 발상이란 생각이 들지 않나요. 애니 중간에  쇠돌이(가부토)가 “내 팔이 움직이는 것을 느껴요.”라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상상적 느낌이지(쇠돌이는 뻥쟁이.^.^.), 마징가 팔이 움직일 때의 그 느낌을 팔에 느끼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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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를 가득채운 남자

 

내부에서 조종하는 시대

세 번째 조종 방식은 <기동전사 건담(1979년)> 방식입니다. 대부분은 몸통(특히 가슴) 부분으로 파일럿이 들어가서 조종석에 앉거나 서는 방식입니다. 로봇과 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니 데미지를 느끼거나 하지 않는 건 마징가와 같지만, 다른 점은 탑승 위치와 별도의 탈것을 이용하느냐 마느냐의 차이입니다. 마징가와 건담은 철인28호와는 달리 ‘내부조종형’ 로봇인 셈인데, 파일럿도 그 만큼 위험하단 말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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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최신작인 유니콘에도 계승되고 있습니다

 

나와 로봇의 물아일체 시대

네 번째 조종 방식은 <에반게리온(1995년)>처럼 파일럿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생각이 로봇에 전달되고, 로봇의 데미지를 파일럿이 느끼는 방식입니다(에바가 로봇이냐 아니냐는 따지지 말아 주세요.~). 내부조종형에서 진화한 일종의 ‘일체형’인데, 다른 어느 방식보다 파일럿과 로봇이 공동운명체가 됩니다. 위험도는 최상인 만큼, 조종하기 편하고 로봇의 움직임도 최상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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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잘 보시면 이 네 가지 방식이 차례로 등장했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1956년 철인28호, 1973년 마징가, 1979년 건담, 1995년 에바. 그리고 이 로봇들은 모두 만화와 애니 역사에 한 획들을 그은 놈들입니다. 그만큼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죠.

<철인28호>가 등장한 시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동안 발전해 온 과학기술로 인간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기입니다. 힘들고 슬픈 불행의 시간이 끝나고 모두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죠. 그 당시 로봇과 같은 기계뿐만 아니라 산이나 강 같은 자연 환경 모두는 우리가 개발하고 주인 노릇을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니 로봇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그저 하나의 ‘물건’이었죠. 그게 당시의 시대 인식이었습니다. <철인28호>는 주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활용하는 대상일 뿐이었을 테고, 외부에서 조종하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물론 아직 기술발달이 미진했으니 복잡한 조종을 불가능한 리모콘으로 말이죠.

1960년대 물질적 풍요의 시대를 거치고 1970년대로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힘을 숭배하게 됩니다. 과학기술로 행복을 기대했던 시대에서 행복을 실제로 체험하는 시대였던 거죠. 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1970년대 남자아이들이라면 모두 과학자를 꿈꿨을 정도였습니다(요즘 모 자동차 업체 광고를 보면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이 적어진 걸 걱정하지만요). 개인 뿐 아니라 사회의 행복은 과학과 기술이 보장해 줄 거라는 믿음이 강했으니까요. 그 만큼 과학기술도 발전했습니다. 쇠돌이가 마징가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마치 호버 파일더가 마징가의 뇌가 되는 것처럼. 과학과 기술은 이성의 산물이라는 시대정신의 반영입니다. 이성을 발달시키고 활용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이성중심주의’, ‘모더니즘’의 최절정 시기였던 거죠.

하지만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차갑고 딱딱하고 획일적인 ‘이성중심주의’는 위기를 맞습니다. 1960년대 유럽에서 시작된 사회운동에서 보였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시대 흐름이 사회 전반에 정착하면서 감성과 감각의 중시, 탈권위, 탈합리주의가 힘을 얻습니다. <건담>은 그런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감독 스스로가 기존의 사회 시스템과 인간의 관계를 부수고 다시 생각하고 싶었다고 했으니까요. 그러니 파일럿이 두뇌에 자리하는 게 아니라, 가슴에 자리하게 됩니다. 지나친 이성을 경계하는 듯 말입니다.

이런 경향성은 <에반게리온>에서 명확해지지만 90년대 초반부터 조금씩 다른 표현이 등장합니다. 통제되는 대상인 로봇을 나와 상관없는 물건으로 볼 것인가, 그렇지 않은 하나의 ‘인격체’로 볼 것인가라는 문제죠. 그저 대상인 물건으로 본다면 모빌 슈트를 내가 아니라 누가 타고 상관없습니다. 로봇은 그냥 말로 옷(슈트)이라는 규격품이니 누가 입더라도 문제는 되지 않죠. 하지만 하나의 인격체로 본다면 얘기는 달라지죠. 바로 짝짓기가 필요하게 됩니다. ‘선택된 파일럿만 조종할 수 있는 로봇’의 탄생입니다. 에반게리온은 그 흐름을 사회에 공표한 대표작입니다. 신지가 아니면 에바 초호기를 조종할 수 없다는 건 완전한 일체를 통해야만 대상이 움직인다는 뜻이고,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내가 되어야 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그래서 신지가 일방적으로 초호기를 조종하는 게 아니라 마치 신지와 초호기가 합의하에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탑승 방식이 이렇게 진화되어 왔다 해도, 개인적으로는 ‘파일더 온!’의 그 멋진 씬이 다시 돌아왔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랍니다. 바야흐로 지금 시대는 뇌과학의 시대. 이성도 감성도 모두 뇌가 관장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는 시대잖아요. 그러니 가슴이니 등이니 일체화니 이딴 거 따지지 말고, 다시 로봇의 머리로 멋지게 들어가는 파일럿의 모습을 조만간 보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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